"너네 펀드 평가해 봤다" 현직자 멘토도 놀란 자산운용사 이직 성공기
3년차 평가사 주니어가 해외운용팀에 합격한 비결

"저는 운용사 분들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냈어요. 너희 펀드를 내가 평가해 봤으니 히스토리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이죠."
이번에 자산운용사 펀드운용본부 해외운용팀으로 이직에 성공한 정영훈 님은 남다른 돌파력을 가졌습니다.
이직 준비 초기에는 막연함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링크드인을 통해 평가사에서 운용사로 먼저 이직한 선배들을 찾아 "어떻게 준비해야 실무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지" 묻는 구절구절한 메시지를 보냈죠.
"자세한 자료는 없어서 다 알지는 못하지만 현장에 가면 누구보다 빠르게 실무에 적응할 수 있다"라는 그의 자신감 넘치는 어필은 결국 자산운용사 합격이라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영훈 님의 시작이 처음부터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숭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3.33이라는 평범한 학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27살에 대학 제휴 프로그램을 통해 우연히 자산평가사 인턴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것이 3년의 경력으로 이어졌죠.
그는 자산평가사 대체평가본부에서 해외 부동산이나 인프라 같은 펀드들의 가치를 매기는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단순히 숫자를 맞추는 "인간 계산기"가 된 것 같다는 회의감이 들었다고 해요.
"내가 진짜 가고 싶었던 길은 펀드를 직접 운용하고 성과를 내는 것이었다"라는 깨달음이 그를 다시 취업 시장으로 이끌었습니다.
당시 그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 하나뿐이었습니다.

이직을 결심하고 처음 쓴 자소서들은 모두 서류 탈락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실무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한 영훈 님은 커리어하이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현직 운용사 주니어들이 수행하는 실무 과제를 직접 해보며 직무 역량을 쌓기 시작했죠.
회사 생활과 교육 과정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퇴근 후와 주말을 꼬박 반납해야 했고 멘토님의 날카로운 피드백과 질책이 이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멘토님은 필요한 말만 딱딱 해 주시는 스타일이라 오히려 좋았다"라며 웃어 보인 그는 이 시기에 펀드 운용 보고서를 분석하고 환헤지 전략을 공부하며 단순 평가사가 아닌 운용사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습니다.

본격적인 합격 전략은 "자소서의 고도화"와 "디테일한 분석"이었습니다.
그는 약 100개에 가까운 지원서를 쓰면서 단순히 회사 이름만 바꾸는 마스터 자소서 방식을 버렸습니다.
대신 GPT를 전략적으로 활용했죠. 채용 공고의 담당 업무와 회사의 경영 이념을 GPT에 입력하고 본인의 평가사 경험과 결합해 나만의 언어로 재창조했습니다.
특히 본인이 평가했던 운용사의 공고가 뜨면 해당 회사의 펀드 운용 보고서를 샅샅이 뒤져 매력적인 점을 찾아냈습니다.
면접장에서도 "다른 곳이 아닌 꼭 이 운용사여야만 하는 이유"를 본인의 실무 경험과 연결 지어 설명하니 설득력이 높아졌습니다.
"평가 업무 외에도 스스로 성과를 냈던 경험들을 강조하며 새로운 분야에서도 금방 적응할 수 있음을 증명하려 노력했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치열한 노력 끝에 진행된 대표님 면접에서 그는 믿기 힘든 말을 들었습니다.
출근 가능 시점을 묻는 말에 한 달 뒤라고 답하자 대표님이 "그럼 오늘 합격 통보받은 걸로 합시다"라며 즉석에서 합격을 결정지은 것이죠.
굳어있던 얼굴이 환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영훈 님은 취업 준비가 길어져 지친 이들에게 "현직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라고 조언합니다.
링크드인이나 네트워킹을 활용해 실제 현장에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 파악하면 자소서의 깊이가 달라진다는 것이죠.
"저도 처음엔 막연하고 힘들었지만 적극적으로 움직이니 길이 열렸습니다. 여러분도 자신만의 강점을 믿고 끝까지 도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심 어린 격려를 전하는 그의 눈은 이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빛나고 있습니다.